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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먹어라, 6차산업

기사승인 2021.02.01  18: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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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효석 착한농부협동조합 이사장

내가 만난 농민 중에 자기가 키운 채소를 전통시장 자기 채소가게에서 파는 농민이 가장 맘 편한 농민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먹고사는 것이지, 나중에 땅 사고 건물 사는 것은 아니더군요.

초짜 농민들은 농작물을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농작물을 키우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해보겠는데, 해마다 만든 수확물을 제대로 파는 재주가 없는 거죠.

전문가들은 그런 농민들에게 경쟁력을 키우면 판로는 저절로 열린다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6차산업입니다. 농민에게 각자 1차 농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을 고루 갖추라고 하네요. 그거 모두 곱해서 6차 산업이라고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농민이 농사짓는 걸로 그치지 말고, 그 농작물로 주스나 장아찌, 건강식품을 만들라는 거예요. 그리고 직접 나서서 제품을 설명하고, 민박도 운영하고, 체험학습 어린이도 교육하는 등 농업을 다각도로 고민하며 꾸려나가라네요.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농민에게 밀키트가 대세라거나, 유튜브도 해야 하고, 라이브 커머스도 해보랍니다. 뭔가 잘 아는 척 하죠. 대기업에 맞서 농민이 식품도 가공하고, 각자 블로그, 페북, 인스타그램도 운영하고 개인 방송도 하라는 식이죠.

초보 농민들은 이런 소리에 현혹되기 쉽고, 나중에 그게 안되면 자기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여 결국 농사를 포기합니다. 알고보면 그런 전문가들은 웃기는 놈들이고 나쁜 놈들이죠. 그런 말로 남의 인생을 흔들어 놓은 셈이니까요.

그렇게 간단하면 나라에서 육해공군을 뭣하러 따로 뽑습니까? 일반 군인을 뽑아 훈련소에서 탱크와 헬기 조종도 가르치고, 함정 정비며, 컴퓨터 프로그램, 특공무술과 포격술처럼 이것저것 다 가르쳐서 전천후 군인으로 만들어, 아무 곳에서나 어떤 전투든 치를 수 있게 하시죠.

한두 농민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면 개인 경쟁력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이 판로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면 이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유통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죠. 당연히 정부는 그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야죠.

그런데도 정부와 공무원들은 여전히 농산물 가공 지원, 스마트 농장이니 해서 뭔가 그럴듯한 일에만 주로 매달립니다. 가족농에서 생산한 소규모 농작물도 제대로 팔지 못하는데, 정부는 저리 대출금 수억원으로 농민을 꼬셔서 대량 생산을 유도하고, 팔지못한 채 창고에서 썩어나가게 합니다.

까다로운 기준에 맞춰 잼과 식초를 만들었지만 담당 공무원조차 사먹지 않습니다. 결국 농민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자살하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나랏돈을 빌려 땅을 사고, 집을 짓거나, 농업 시설과 제조 공정을 구축하는 순간 죽는 날까지 대출금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거주 가옥과 토지, 시설 일체를 넘기고 재배 제조기술까지 알려준다며 매물로 나온 것들이 전국에 널렸으나, 안 팔립니다. 그나마 내가 산 땅이 우연히 산업단지, 아파트 부지 등으로 수용되어야 그 고통이 끝납니다.

게다가 외국인노동자를 지금까지 비교적 값싸게 쓰게 하더니, 최근에 문제가 많아지니까 노동자 숙소를 개선하라며 임시 숙소는 단속한다고 하네요.

앞으로 농민은 기숙사를 잘 지어야 외국인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유통을 개선하여 판로를 열어주지 않고 외국인노동자를 정상 채용하도록 지원하지 않는데, 도대체 농민들이 어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의문스럽네요.

전남 장성군에서 생산하는 잔디가 전국 잔디 유통량의 60~70%쯤 차지한다고 하더군요. 몇 년 전 그곳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밭에 잔디를 심어 팔기까지 철저하게 분업하고 있었습니다. 즉, 토지만 제공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심거나 기르거나, 기계로 자른 잔디를 다섯장씩 묶는 사람까지 모두 각자 제 몫을 가져갑니다. 

농협은 잔디 관련 기계를 외국에 대량 주문하여 농민에게 값싸게 팔고 농기계 정비를 지원하더라구요. 농산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야 하는지 모범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일부 잔디 대농가 중에는 사람을 고용하여 식재에서 판매까지 전과정을 책임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양파를 심은 농민은 양파만 키워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양파 종자를 개량하는 사람 따로, 수거하고 유통하는 사람 따로, 식품으로 가공하는 제조업자가 따로, 조리하는 사람 따로, 홍보하며 판매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죠.

정부는 시스템을 이렇게 개선하려 하지 않고, 농민 한 사람에게 생산에서 재배, 가공, 판매까지 모든 짐을 지라고 합니다. 답답하고 한심스럽습니다.

6차산업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사기꾼들입니다. 자기들도 해보지 않은 일을 농민에게 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욕합니다.

"선생님은 강사 노릇,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 사위 노릇, 아들 노릇, 선배 노릇, 친구 노릇, 동료 노릇, 이웃 노릇 등을 모두 잘 하시는지요?"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고요? 그러면서 농민에게는 모든 것을 갖추라고요?“

<기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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